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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역모로 시작한 탕평책

'이인좌의 난'이라는 생소한 소재로 <역모- 반란의 시대>라는 영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조가 조선 왕조 최장 재위를 기록한 탕평 군주라는 사실은 알지만, 의외로 그가 집권한 초기에 나라를 뒤흔든 대반란 사건이 일어난 사실은 모른다.
이인좌의 난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경종1)을 독살한 영조?


 이 기록은 영조의 삶 자체를 뒤흔든 결정타라 할 만한 사건이다. 여기서 갑진년은 영조 즉위년인 1724년을 말한다. 사건 전모는 이러하다. 소론2) 강경파인 준론의 후예들이 과거 시험 답안지에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죽음을 각오하고 영조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영조는 즉각 이들을 잡아들여 국문을 열었다. 이때 신치운이 말한 것이 "갑진년 이후로 게장을 먹지 않는다"는 발언이다. 경종은 영조가 진상한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쓰러졌는데, 두 음식은 함께 먹으면 복통을 유발하는 등 상극으로 여겨진다.

 이후 소론 계열은 영조가 경종을 독살당했다는 의심을 품었고, 얼마 후 이를 기정사실로 여겼다. 영조 4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무신란)'은 영조가 경종에게 독살당했다는 전제하에 소론이 일으킨 반란이다. 영조로서는 왕위계승의 정통성이 위태해진 사건이다.


실패로 돌아간 반란


 왕이 된 영조는 탕평을 내세우며 경종 시절 실각한 노론3)세력을 복권시켰다. 그리고 소론 강경파 존론을 숙청하고 소론 탕평파 완론 정권을 내세우는데, 이게 바로 정미환국이다. 소론 준론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이인좌의 난'은 이렇게 시작했다.

 반란군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켰다. 초반 기세는 맹렬했다. 이인좌는 청주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경기도로 진군했고, 영남과 호남에서도 대규모 병사가 일어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평안도 관찰사 이사성이 군사를 일으켜 남하하고, 한양에서는 총용사 김중기, 포도대장 남태징 등이 내응하기로 계획돼 있었기에 영조 행정부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호남 거병은 전라감사 정사효의 배신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붕괴했고, 한양에서 내응하기로 한 김중기, 남태징 역시 체포되면서 서울 북쪽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나마 이름값을 한 건 반란 총대장 이인좌와 영남 지방의 정희량이다. 이인좌는 초반 청주성 함락 이후 경기도 안성까지 진출했다. 정희량의 영남군은 영남 대부분을 점령했는데, 그 수가 7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군이 충청도와 전라도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을 막아서는 통에 다른 반란군과 연계할 수 없게 됐고, 결국 경상도에서 항전했다. 이인좌는 안성에서 토벌군에게 격퇴당하고, 자신은 사로잡힌다. 단 한 번의 패전이 반란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당시 반란군의 구성 때문이었다. 당시 반란군은 대단한 군세를 자랑했지만, 사실 돈을 주고 산 용병이나 관군을 회유해 가담시킨 이들이었다. 신념이나 사상보다 이권에 얽혀 있었기 때문에 패전 한 번으로 쉽게 기세가 꺾이고 만 것이다.


탕평책의 시작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뒤 영조가 보인 행보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반란의 수장 이인좌를 포함한 연루자들은 처벌했지만, 이후 소론에 매우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탕평을 주장한 영조에게 노론과 소론은 어깃장을 놓았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반목에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영수인 이광좌와 민진원을 불러 직접 화해를 주선했다. 이들의 손을 억지로 끌어내 악수를 시키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영조는 지속적으로 탕평을 주창하며 노론과 소론의 영수들을 불러 화합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영조 최대의 치적 중 하나로 평가하는 탕평책의 시작이다.

 영조는 이인좌의 난으로 소론에 배신감을 느꼈지만, 자신도 살고 나라도 살릴 비책으로 탕평책을 주장했다. 이인좌의 난이 없었다면 탕평책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 1) 경종 -  조선의 제 20대 왕(재위 1720~1724).

                숙종과 장희빈 사이의 아들로,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영조)로 책봉.


  

      ◆ 장헌세자(사도세자)의 폐위와 아사 사건을 계기 ---> 이를 동정하는 파 - 시파

                                                                              ---> 영조의 처사를 옹호하는 파 - 벽파

   2) 소론 - 조선 후기 서인에서 분파된 정파.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서인에서 나온 당파.

   3) 노론 - 소론과 같이 서인에서 분파되어 조선 후기에 권력을 잡은 정파.



                                                                                                     출처.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그림  김형석, 네이버